이영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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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영훈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한신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2017년까지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경제사학회 회장, 뉴라이트전국연합 고문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과 펜앤드마이크 객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며, 일제강점기 한국에 대한 교과서 서술의 왜곡을 비판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논란이 되는 발언을 하여 비판을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대한민국 이야기』, 『대한민국 역사』, 『반일 종족주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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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경제학자)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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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이영훈 |
한자 표기 | 李榮薰 |
로마자 표기 | I Yeong-hun |
출생일 | 1951년 9월 10일 |
출생지 | 대한민국 |
본관 | 전주 |
학력 | |
모교 | 서울대학교 |
학위 | 박사 |
전공 | 경제학 |
경력 | |
직업 |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주요 관심 분야 | 경제사 |
소속 |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 |
지도 교수 | 안병직 |
기타 정보 | |
관련 인물 | 김부겸 (처남 친일파 논란) |
2. 학력 및 경력
이영훈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신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냈으며, 2002년부터 2017년 2월 정년 퇴임 때까지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했다.[15] 2013년 경암상을 수상했다.[5] 정년 퇴임 후에는 이승만학당 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 1. 학력
- 1970년: 경북고등학교 졸업[12]
- 1974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13]
- 1977년 - 1982년: 지곡서당 한학 5년 과정[13]
- 1985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학위 취득[13]
2. 2. 경력
- 1985년 - 1989년: 한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12]
- 1989년 - 2002년: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12]
- 2002년 - 2017년 2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부 교수 (2017년 2월 28일 정년 퇴임)[15]
- 2004년: 한국경제사학회 회장
- 2005년: 뉴라이트전국연합 고문
- 2005년 1월: 교과서포럼 공동대표
- 2008년 12월 - 2009년 2월: 규슈 대학 한국연구센터 객원교수[14]
- 2014년 2월: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
- 2019년: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
- 펜앤드마이크 객원 칼럼니스트
3. 생애 및 주요 활동
이영훈은 1970년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4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다.[13] 1977년부터 1982년까지 지곡서당에서 한학 5년 과정을 수학했으며,[13] 1985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선 후기 토지 소유의 기본적인 구조와 농민의 경영"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12]
1985년부터 1989년까지 한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1989년부터 2002년까지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역임했다.[12] 2002년부터 2017년 2월 정년 퇴임할 때까지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했다.[15] 2008년 12월부터 2009년 2월까지 규슈 대학 한국연구센터 객원교수를 지냈다.[14]
2004년 한국경제사학회 회장, 2005년 뉴라이트전국연합 고문 및 교과서포럼 공동대표, 2014년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19년부터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펜앤드마이크 객원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정년 퇴임 후에는 이승만학당 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에는 자유민주주의, 시장 경제, 대한민국 헌법 질서를 기초로 한 정통 사관으로 이승만 등 건국 세력과 박정희의 산업화 세력 등을 서술한 『대한민국 역사』를 출간하여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하는 시장 경제 대상 저술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22] 2016년에는 자유기업원이 선정하는 제3회 자유원상을 수상했다.[24] 2016년 2월 26일 대한민국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의 "화합과 공생 포럼" 위원장에 취임했다.[23]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편집에 참여했고, 그 내용을 2006년 6월 한국교육방송공사 라디오에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특강"으로 방송했다. 2007년에는 이를 증보하여 『대한민국의 이야기 해방 전후사 재인식 강의』를 출판했고, 이 책은 2009년 문예춘추사에서 『대한민국의 이야기』로 번역 출판되었다. 조정래의 작품 『아리랑』에 대해 "상품화된 민족주의"[20]의 사례로 비판했다.[21]
반일 종족주의를 비판하며, 조선에 민족이라는 관념이 처음 도입된 것은 일제강점기의 일이며, 일본에 의한 억압과 차별 속에서 생긴 새로운 공동체 의식이 조선의 민족주의라고 주장했다. 그는 조선의 민족주의가 일본의 민족 의식과 크게 다른 점은 친족의 확대 형태로 수용된 점이며,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는 민족 의식"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30]
3. 1. 초기 연구 활동
안병직, 이대근 등과 함께 이씨 조선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국의 경제사를 연구했다. 특히 식민지 지배 하의 조선 경제 연구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에 의한 식민지 시대에 한국이 토지와 식량을 수탈당했다는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은 왜곡된 것이다"라는 주장을 제기하며, "우리가 식민지 시대에 대해 알고 있는 한국인의 집단적 기억은 많은 경우 만들어진 것이고, 교육받은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16]북한에 대해 극히 부정적이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에 기반한 남쪽 국가와, 필자가 보기에 한국사가 일찍이 경험했던 국가적 농노제의 재래와 다름없는, 국가 이성의 발달 수준이 지배 계급이 수도에 집주한 고려 시대에 이르러 후퇴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북쪽 국가와 하나가 된다는 엉뚱한 국가 공학이 국민 대중으로부터 저토록 광범위하고 헌신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은, 어떤 유능한 정치 지도자의 교묘한 대중 조작 탓으로만 치부할 수 없으며, 유구한 역사 이래, 한국인은 하나의 공동 민족이었다는, 어떻게 해도 증명할 수 없는 신화의 괴력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17]
-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의 원칙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은 채, 남북한 정상이 서로 껴안고 있는 사진을 여러 차례 보여주며, 마치 통일의 날이 임박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통일은, 대체 누구를 위한 통일입니까? 통일하려면, 우선 북한의 수령 체제가 해체되어야 한다는 비판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습니다"[18]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가 제2회 친일인명사전을 발표한 것에 대해 "일제 시대에 문명을 학습한 사람들과, 한국에 현대 문명을 뿌리내리게 한 인물들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대 한국에 사는 자신들의 역사를 부정한다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19]
조선 후기에 자본주의의 맹아가 존재했지만,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싹이 잘려나갔다는 "자본주의 맹아론"을 비판하며, "환상"이라고 평하고 있다.[10]
"조선 후기 토지 소유의 기본적인 구조와 농민의 경영"이라는 논문으로 1985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12]
사사키 준노스케의 "아시아의 혁명의 주체로서 빈농이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발전해 온 과정을 추구하는 것이, 아시아의 혁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역사학도에게 부여된 임무"라는 내용의 논문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경제사학자로서 해야 할 일을 발견했다고 말하고 있다.[10]
3. 2. 뉴라이트 활동과 식민지 근대화론
이영훈은 서울대학교 안병직 교수의 제자로, 뉴라이트 진영에서 활동하며 대안 역사 교과서 집필과 칼럼 기고 등을 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대한민국 이야기》와 여러 논문에서 법과 무역을 통한 식민지적 수탈을 주장했다. 또한, 《대한민국 이야기》에서 정신대와 종군위안부의 차이를 밝히고, 위안부 강제 징집은 아니지만 일본군과 조선총독부가 배후에 있었다고 주장한다.[35]2006년 12월 1일, 그가 참여한 고등학생용 《한국근현대사 대안 교과서》에서 4·19혁명을 《4·19학생운동》으로, 5·16군사정변을 《5·16혁명》으로 기술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 교과서는 2008년 3월 24일 수정되어 출간되었으며, 박효종 교수 등도 참여했다.[39] 2007년 5월 25일에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쉽게 풀어 쓴 《대한민국 이야기》를 출간했다.[40] 2008년 11월 25일, 서울특별시 교육청의 "현대사 특강" 강사로 배정되었으나, "친일", "우편향" 논란으로 조갑제 대표와 함께 배제되었다.[41]
그는 이씨 조선 시대부터 현대까지 한국 경제사를 연구하며, 특히 식민지 시대 조선 경제 연구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일본 식민지 시대에 한국이 토지와 식량을 수탈당했다는 교과서 서술은 왜곡이라고 주장하며, 식민지 시대에 대한 한국인의 집단적 기억은 만들어지고 교육된 것이라고 주장한다.[16]
3. 3. 일본군 '위안부' 관련 발언과 논란
2004년 9월 2일 문화방송의 100분 토론에 출연하여 "정신대가 조선총독부의 강제동원이 아니라 한국인의 자발적으로 참여로 이뤄진 상업적 공창"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일제 식민 통치를 찬양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욕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36] 이영훈 교수는 "정신대 관련 일본 자료를 보면 범죄행위는 권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참여하는 많은 민간인들이 있었다"며 "한국 여성들을 관리한 것은 한국업소 주인들이고 그 명단이 있다"고 주장하여 정신대 문제를 성매매와 동일시 하였다.[36] 그러나 이후 자신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으나 결과적으로 할머니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었다며 사과했다.정의기억연대 (상임대표 신혜수)로부터 교수직 사임을 요구받았다.[31] 결국, 2004년 9월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피해자에게 한국식으로 땅에 엎드려 사죄(땅에 이마를 대고 굴복의 뜻을 표명)를 하고 사의를 표하며 "일본에 협력한 많은 한국인이 있었고, 식민지 해방 이후에도 여성들의 성 착취가 국가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자신의 견해를 밝혔지만,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수십 분 동안 욕설을 들었다.[32]
이영훈은 조선총독부에 의한 위안부 강제 연행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여 대한민국 내에서 비판을 받았다.[9] 그는 대한민국에서 성노예로 여겨지는 위안부의 수가 한국 교과서에서 과장되었다고 주장했다.[6][7][8]
3. 4. 기타 활동
서울대학교 안병직 교수의 제자이며, 뉴라이트 진영에서 대안 역사 교과서 집필이나 칼럼 기고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이영훈은 저서 《대한민국 이야기》와 여러 논문에서 무력이 아니라 법과 무역을 통해 전개된 식민지적 수탈을 논하였다. 《대한민국 이야기》에서 이영훈은 정신대와 종군위안부의 차이점을 명확히 밝히고, 위안부는 강제 징집된 것은 아니나 배후에 일본군과 조선총독부가 있었음을 주장한다.[35]4. 주요 주장 및 논점
이영훈은 안병직, 이대근 등과 함께 이씨 조선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국의 경제사를 연구했으며, 특히 식민지 시대 조선 경제 연구로 알려져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의 친일인명사전 발표에 대해 "일제 시대에 문명을 학습하고 한국에 현대 문명을 뿌리내리게 한 인물들을 부정하는 것으로, 현대 한국의 역사를 부정하는 모순을 내포한다"고 비판했다.[19]
북한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그는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에 기반한 남쪽 국가와, 한국사가 일찍이 경험했던 국가적 농노제와 다름없는 북쪽 국가가 하나가 된다는 엉뚱한 국가 공학이 국민 대중의 광범위하고 헌신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한국인이 하나의 공동 민족이었다는 증명할 수 없는 신화의 괴력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17]
2013년 자유민주주의, 시장 경제, 대한민국 헌법 질서를 기초로 이승만과 박정희의 건국·산업화 세력을 서술한 『대한민국 역사』를 출판했다. 이 책에서 좌파의 이데올로기에 반론하며, 성공적인 한국 현대사 (한강의 기적)를 부각시켜 우파 현대사 확립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함께 전국경제인연합회 시장 경제 대상 저술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22]
2016년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 "화합과 공생 포럼" 위원장에 취임했고,[23]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 온 노력"으로 제3회 자유원상을 수상했다.[24]
4. 1. 식민지 근대화론
안병직, 이대근 등과 함께 이씨 조선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국의 경제사를 연구했다. 특히 식민지 지배 하의 조선 경제 연구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에 의한 식민지 시대에 한국이 토지와 식량을 수탈당했다는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은 왜곡된 것이다"라는 주장을 제기하며, "우리가 식민지 시대에 대해 알고 있는 한국인의 집단적 기억은 많은 경우 만들어진 것이고, 교육받은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16]조선 후기에 자본주의의 맹아가 존재했지만,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싹이 잘려나갔다는 "자본주의 맹아론"을 비판하며, "환상"이라고 평하고 있다.[10]
조정래의 작품 『아리랑』에 대해, "상품화된 민족주의[20]"의 사례로 비판을 가하고 있다.[21]
4. 2. 일본군 '위안부' 문제
2004년 9월 2일 문화방송의 100분 토론에 출연하여 "정신대가 조선총독부의 강제 동원이 아니라 한국인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상업적 공창"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논란을 일으켰다.[36] 이 교수는 "정신대 관련 일본 자료를 보면 범죄 행위는 권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참여하는 많은 민간인들이 있었다"며 "한국 여성들을 관리한 것은 한국 업소 주인들이고 그 명단이 있다"고 주장하여 정신대 문제를 성매매와 동일시하였다.[36]그러나 이영훈은 이후 자신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으나, 결과적으로 할머니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었다며 사과했다. 정의기억연대로부터 교수직 사임을 요구받았다.[31] 2004년 9월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피해자에게 한국식으로 땅에 엎드려 사죄하고 사의를 표하며, "일본에 협력한 많은 한국인이 있었고, 식민지 해방 이후에도 여성들의 성 착취가 국가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자신의 견해를 밝혔지만,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수십 분 동안 욕설을 들었다.[32]
이영훈은 일제강점기 한국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발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성노예로 여겨지는 위안부와 강제 징용 노동자의 수가 한국 교과서에서 과장되었다고 주장했다.[6][7][8] 그는 조선총독부에 의한 위안부 강제 연행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여 대한민국 내에서 비판을 받았다.[9]
4. 3. 반일 종족주의 비판
이영훈은 안병직, 이대근 등과 함께 이씨 조선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국의 경제사를 연구하고 있다. 특히 식민지 지배 하의 조선 경제 연구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에 의한 식민지 시대에 한국이 토지와 식량을 수탈당했다는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은 왜곡된 것이다"라는 주장을 제기하며, "우리가 식민지 시대에 대해 알고 있는 한국인의 집단적 기억은 많은 경우 만들어진 것이고, 교육받은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16]북한에 대해 극히 부정적이며,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에 기반한 남쪽 국가와, 필자가 보기에 한국사가 일찍이 경험했던 국가적 농노제의 재래와 다름없는, 국가 이성의 발달 수준이 지배 계급이 수도에 집주한 고려 시대에 이르러 후퇴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북쪽 국가와 하나가 된다는 엉뚱한 국가 공학이 국민 대중으로부터 저토록 광범위하고 헌신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은, 어떤 유능한 정치 지도자의 교묘한 대중 조작 탓으로만 치부할 수 없으며, 유구한 역사 이래, 한국인은 하나의 공동 민족이었다는, 어떻게 해도 증명할 수 없는 신화의 괴력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17] 또한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의 원칙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은 채, 남북한 정상이 서로 껴안고 있는 사진을 여러 차례 보여주며, 마치 통일의 날이 임박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통일은, 대체 누구를 위한 통일입니까? 통일하려면, 우선 북한의 수령 체제가 해체되어야 한다는 비판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18]
반일 종족주의를 비판하며, 조선에 민족이라는 관념이 처음 도입된 것은 일제강점기의 일이며, 일본에 의한 억압과 차별 속에서 생긴 새로운 공동체 의식이 조선의 민족주의이지만, 조선의 민족주의가 일본의 민족 의식과 크게 다른 점은, 그것이 친족의 확대 형태로 수용된 점에 있으며, 그것을 따라가면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는 민족 의식"에 이르게 되며, 특히 양반에게서 이 관념은 떨쳐 버릴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며, "족보"의 웅대한 확대 버전이 조선 민족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개인은 전체에 몰아적으로 포섭되고, 집단의 목표와 지도자를 몰개성적으로 수용합니다. 이러한 집단이 종족입니다. 이러한 집단을 단위로 한 정치가 '종족주의'입니다. 저는 한국의 정치는 이러한 종족주의의 특징을 강하게 띠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이러한 한국의 정치 문화가 대외적으로 일본과의 관계에 이르러서는, 매우 강한 종족주의로 분출합니다."라고 지적했다. "반일 종족주의는 1960년대부터 서서히 성숙하여, 1980년대에 이르러 폭발했습니다. 자율의 시대에 이르러, 물질주의가 꽃피었던 것과 궤를 같이 했습니다. 반일 종족주의에 편승하여, 한국의 역사학계는 수많은 거짓말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책이 고백한 몇 가지는, 그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거짓말은 또한 반일 종족주의를 강화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의 정신 문화는 그 악순환을 겪었습니다. 그 속에서 한국의 정신 문화는 서서히 낮은 수준으로 떨어져 갔습니다."라고 말했다.[30]
5. 논란 및 비판
이영훈은 위안부에 대해 "종군 위안부는 매춘업"이며, "조선총독부가 강제적으로 위안부를 동원했다고 어떤 학자가 주장하는가"라는 등의 발언을 해 정의기억연대로부터 교수직 사임을 요구받았다.[31] 2004년 9월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피해자에게 땅에 엎드려 사죄하고 사의를 표명하면서, "일본에 협력한 많은 한국인이 있었고, 식민지 해방 이후에도 여성들의 성 착취가 국가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지만, 피해자들에게 수십 분 동안 욕설을 들었다.[32]
5. 1. 일본 연구자금 수혜 논란
낙성대경제연구소는 이영훈이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중,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도요타재단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전시기/해방기(1937~1950년) 한국 농촌사회의 변동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영훈은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를 포함한 한일 양국 학자 15명과 함께 1988년부터 3년간 도요타재단으로부터 300만엔(3400만원)을 지원받아 '한국의 경제발전에 관한 역사적 연구'를 진행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연구는 이영훈이 주장해 온 식민지 근대화론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는 작업이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 강점기를 식민지배의 도덕성 여부와는 별개로 한국의 경제 및 정치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론으로, 일제 강점기를 옹호적으로 묘사하여 비판받는다.[43]5. 2. 독립운동가 차리석 후손 논란
이영훈은 2019년 자신이 독립운동가 차리석 선생의 외증손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차리석의 외아들인 차영조는 이영훈이 차리석 선생의 외증손자가 아니라고 밝혔다. 차리석 선생의 외아들인 차영조 독립유공자유족회 선생은 MBC와의 인터뷰에서 "큰아버지의 둘째 딸과 30년 전에 만나 교류하고 있는데 그분에게 확인했더니 이영훈 명예교수는 내 큰아버지의 외증손자일 뿐이다. 차리석 선생의 외증손자가 아니다"라고 밝혔다.[44]이에 대해 이영훈은 "고(故) 차리석 선생은 자신의 외조모의 둘째 숙부로, 외외증종조부라 해야 마땅하나 줄여서 외증조부라 했다"고 해명했다. 이영훈은 차리석 선생의 직계 후손이 아닌 선생의 큰형인 차원석 씨의 외증손자다. 즉 차원석 씨의 딸의 딸의 아들이 이영훈이다.[44]
5. 3. 서울대 명예교수 사칭 논란
이영훈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를 사칭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영훈은 언론에서 여러 차례 명예교수로 소개되었다. 서울대학교에서 나온 직후인 2017년 3월 월간조선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명예교수로 소개되었고,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명예교수로 언급되었다.[45][46]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규정은 ‘본교에서 전임교원으로 15년 이상 재직한 사람’을 추대 자격으로 두고 있는데, 이영훈은 재직 기간 미달로 애초에 추대될 수 있는 자격이 없었다. 한 학기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교 측에서 가지고 있는 명예교수 목록에도 이영훈의 이름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45][46] 이영훈이 교장으로 활동 중인 이승만 학당 홈페이지에도 이영훈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라고 소개하고 있었다.[47]6. 저서
- 조선후기 사회경제사
- 근대 조선 수리조합연구 (공저)
-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 (편저)
- 대한민국 이야기 (2007년, 도서출판 기파랑)
-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 (공저, 2007년, 도서출판 기파랑)
-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공저, 2006년, 책세상)
-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 (공저, 2008년 3월 25일, 도서출판 기파랑)
- 대한민국 역사 (2013년, 도서출판 기파랑)
- 한국경제사Ⅰ·Ⅱ (2017년, 도서출판 일조각)
-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2018년, 백년동안)
- 반일 종족주의 (2019년, 미래사) - 공동 저자: 이우연, 주익종, 정안기, 김용삼, 김낙년
-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 (2020년, 미래사) - 공동 저자: 이우연, 주익종, 정안기, 김용삼, 김낙년, 차명수, 박상후
- 호수는 어디에 (2021년, 백년동안)
- 『근대 조선 수리 조합의 연구』(1992년, 미야지마 히로시·이영훈·마쓰모토 다케히사·장시위안, 일본평론사)
- 『근대 조선 공업화의 연구』(1993년, 나카무라 사토시·안병직 편, 일본평론사)
- 『조선 토지 조사 사업의 연구』(1997년, 김홍식·미야지마 히로시·이영동·박석두·조석곤·김재호, 민음사)
- 『수량 경제사에서 본 조선 후기』(2004년 이영동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2006년, 박지향·김철·김일영·이영훈, 본의 세계)
- 『대한민국의 이야기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강의』(2007년, 기파랑)
-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공저, 2008년, 도서출판 기파랑)
- 『대한민국의 이야기 한국의 『국사』 교과서를 다시 쓰라』(나가시마 히로키 역, 2009년 3월, 문예춘추)
- 소개 「한국의 역사 교과서를 다시 쓰라」- (『월간 문예춘추』2009년 5월호)
- 『대한민국 역사』(2013년, 도서출판 기파랑)
- 『한국 경제사』 (한국 경제사, 전 2권, 일조각, 2016년 12월)
- 『반일 종족주의』 미래사, 2019년 7월.
- 편저 『반일 종족주의 한일 위기의 근원』[33]문예춘추,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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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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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증손자? 팔게 따로 있지” 차리석 선생 외아들, 이영훈 교수에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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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위안부 성노예화 없었다” 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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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논란 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 사칭…"유감 표명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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